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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이 쓴 이중섭 이야기② (일본편)


이중섭 화가는 1936년에서 1943년까지(21살에서 28살까지) 일본에 거주합니다. 그 기간 도쿄 '문화학원'에서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18살에 입학)를 만나 7년 후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일본에 이중섭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가장 빛났을 장소에 한 번쯤 가보고 싶었습니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중섭 화가다

= 목차 =


■ 이노카시라 공원


■ 문화학원(분카 가쿠인)


■ 니시무라 이사쿠, 르방미술관


■ 마사코의 백년


■ 글을 마치며


※ 참고로 이중섭 이야기①은 서촌의봄 사이트에 2021.9.14 게시되어 있습니다.


 

■ 이노카시라 공원


이노카시라 공원의 이중섭

이중섭 화가는 도쿄 '문화학원' 재학 시절 기치조지의 이노카시라 공원 인근 아파트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으로 치면 일산에 거주하며 서울로 학교를 다닌 셈이다. 1917년 개원한 이노카시라 공원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만들어진 '지브리 스튜디오'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이중섭 화가의 일본 거주지를 계속 찾아보았지만 끝내 알 수 없었다. 이노카시라 공원과 주변 아파트들을 바라보며 이중섭이 여기를 걷지 않았을까, 거주지가 혹시 이 곳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노카시라 공원에는 까마귀(실제로 보면 제법 크다)가 많았다. 일본에서는 까마귀를 길조로 여겨서 그런 것일까? 이중섭 화가의 그림 중에도 '달과 까마귀'가 있는데 이 곳 공원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 문화학원(분카 가쿠인)



이중섭 화가는 문화학원(분카 가쿠인)에서 5년간(학부3년, 연구생2년) 미술을 공부하고 아내인 마사코도 만난다. 도쿄 간다의 스루가다이(거리 이름)에 설립된 문화학원은 오차노미즈 역과도 가깝다. 현재는 문화학원의 상징과도 같은 입구의 아치 구조물만 남기고 뒤쪽으로 BS11 방송국 건물이 높이 들어서 있다


문화학원이 있던 곳이 서촌 누상동처럼 언덕인데, 학교 수업을 마친 마사코와 이중섭은 손을 잡고 걸어 내려가 진보초(거리 이름)의 음악다방과 서점을 종종 갔을 것이다. 가끔은 반대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 '간다 신사(간다 묘진)'에도 들르지 않았을까 싶다. 이중섭 화가는 당시에도 운행했을 중앙선 전차를 타고 기치조지와 간다 사이를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 사진들은 문화학원이 있던 곳 인근 현재의 모습이다.



문화학원은 2008년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현재의 고층 건물(BS방송국으로 사용된다)을 새로 짓는다. 2014년에는 간다의 설립 장소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다가 2018년 결국 폐교한다. 다만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입구의 아치 구조물과 설립 장소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는 보존되어 있다.



 

■ 니시무라 이사쿠, 르방미술관


문화학원의 이중섭

사진의 앞줄 왼쪽에서 3번째가 '이중섭'이고, 5번째가 문화학원의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인 '니시무라 이사쿠' (1884 - 1963)다.


1921년 문화학원을 설립한 니시무라 이사쿠는 당시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인물이다. 건축가이면서(문화학원 건물도 직접 디자인했다) 그림도 그리고 시도 썼다. 아래 사진들은 르방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의 시기별 모습들이다.



그가 예술 학교(미술, 문학, 음악, 무용 등을 가르쳤다)를 설립한 동기는 본인의 딸들(아홉 자녀 중 딸이 여섯이다)을 남녀가 평등하고 개성이 존중되는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복 착용이 없고 남녀공학이라는 점도 당시의 일본 학교와는 다른 점이다. 학교가 아닌 학원 형태로 설립한 것도 정부의 간섭을 덜 받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니시무라 이사쿠의 자유분방한 말과 행동은 일본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고, 문화학원의 자유로운 교육 또한 국가 정책에 맞지 않다고 간주되어 태평양 전쟁 중이던 1943년 그는 체포되고 학원은 강제 폐쇄된다. 그 후 일본 정부는 문화학원을 연합군 포로수용소로 사용한다. 그 덕분에 미군 비행기의 폭격을 면해서 건물이 보존되었다. 이중섭 화가는 1942년 졸업 후 일본 미술계에서 활동 중이었다. 종전 1년 후인 1946년 문화학원은 원래의 장소에서 다시 문을 연다.


'니시무라 이사쿠'의 약력(르방미술관)
서촌(西村) = 니시무라(西村)

일본 방문에서 한 가지 놀란 사실은 '니시무라 이사쿠'의 성씨인 '니시무라'가 한자로 '서촌'이란 점이다. 서울의 '서촌'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중섭 화가가 서울에서 처음 거주한 장소가 서촌인데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학원은 폐교되었지만 니시무라 이사쿠의 직계 후손들이 도쿄에서 고속 철도로 1~2시간 거리인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문화학원의 교육 이념과 학원 건물을 재현한 '르방미술관'을 1997년 설립해서 운영해 오고 있다. 다만 1921년 설립 시 문화학원을 재현한 것이라, 1923년 관동 대지진 후 재건축한 이중섭 재학 시절(1937년~1942년) 건물과는 차이가 있다.


니시무라 이사쿠의 넷째 딸인 '소노'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는데, 문화학원 2년 선배여서 이중섭과도 알고 지낸 사이다. 딸인 소노의 성씨 역시 '니시무라(서촌)'다.


아래 사진들은 르방미술관 내부의 모습이다. 니시무라 이사쿠의 작품을 포함해서 문화학원을 졸업하거나 교사로 일한 사람들의 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방문에는 뜻하지 않은 행운도 생겼다. 한국에서 이중섭 화가의 발자취를 찾아 방문했다는 얘기를 듣고(요청하지 않았는데), 미술관 직원이 본인의 핸드폰으로 미술관의 현 소유주(니시무라 이사쿠의 증손녀)에게 전화를 해서 바꾸어 준 것이다.


증손녀와의 통화는 약 10분간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그녀는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잘했다(영국에서 유학했다고 미술관 직원이 나중에 알려줬다). 그녀는 통화에서 본인 가족들도 문화학원을 졸업한 이중섭이 한국에서 아주 인정받는 화가임을 잘 알고 있으며, 그녀의 어머니와 이모는 제주 이중섭 미술관에도 갔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중섭의 아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두 달 전 마사코가 사망한 사실을 뉴스를 통해 알았다며, 증손녀는 마치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에게 하듯이 깊은 조의를 표했다. 그리고 미술관의 재정과 기부가 넉넉하지 않아 영어로 된 자료가 많이 없는 점을 미안해 했다. 또 르방미술관이 이중섭 화가의 작품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하며 유감을 표했다. 한국에서 방문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도 했다.

니시무라 이사쿠의 후손과 얘기할 수 있게 해 준 미술관 직원(그녀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의 진심 어린 환대와 도움에 감사드린다.


 

■ 마사코의 백년



2022.8.13 '야마모토 마사코'가 10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에 이사 온 미수쿠의 집에서 이중섭과 함께한 7년(한국 거주)을 제외하고 평생 거주했다. 다만 큰 저택이던 집이 가세가 기울어 현재의 작은 2층 집으로 변했다.



마사코의 일본 거주지 관련해서는 조사해 보니 조선일보(또는 주간조선) 기자가 미수쿠의 집을 방문해서 마사코를 인터뷰한 기사가 있었다. 해당 언론사에 문의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조카(서촌의봄 사이트를 디자인했다)가 이중섭 관련 옛 자료에서 힌트를 얻어 정확한 주소를 찾아 주었다. 일본 방문 시 가슴이 두근거린 순간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마사코의 집에 도착하기 직전 그랬다.


오누키 도모코 '사랑을 그린 사람'

한국에는 출간되지 않았는데 일본인이 쓴 이중섭과 마사코에 대한 책이 있다. 2021년 일본에서 출간된 '사랑을 그린 사람 (부제: 이중섭과 야마모토 마사코의 백년)'이다.


저자인 '오누키 도모코'는 마이니치 신문사 한국 특파원으로 6년간 한국에 거주한 일본인이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를 개최했고, 취재를 간 그녀는 막상 이중섭의 그림보다 이중섭과 마사코가 주고받은 편지에 주목한다. 이중섭이 아내에게 쓴 편지를 원문 그대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틋한 사연에 감동한 그녀는 그때부터 이중섭과 마사코의 인연에 관심을 가지고 오랜 기간 국내외 자료를 조사하고 이중섭이 머물렀던 국내외 장소들을 방문 취재한다. 당시 일본에 생존해 있던 마사코와는 3년에 걸쳐 3번의 인터뷰를 한다. 5년간의 조사, 취재, 인터뷰를 거쳐 책이 나왔다.


한국에는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아 역시 조카(지금은 군대에 갔다)의 도움으로 책 내용을 모두 확인했다. 작가가 2019년 7월 진행한 인터뷰는 마사코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였다. 그녀의 기력이 약해져서 더 이상의 인터뷰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작가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혼자 남겨진 후 긴 세월을 마사코가 무엇을 의지해 살아온 것일까를 가장 알고 싶어한다. 그 질문에 대해 마사코는 분명한 답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행간의 의미를 읽듯이 그녀의 마음을 가늠해보는 작가의 진심이 책에 담겨 있다. 조만간 한국에도 번역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 이 글을 게시한 후 책이 번역되어 2023.8.13 한국에서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판 책의 제목은 '이중섭, 그 사람(부제: 그리움 너머 역사가 된 이름)' 이다.

 

■ 글을 마치며


르방미술관 정원의 우물

이중섭과 마사코의 생을 우물에 비유한다면 두 사람은 하늘나라로 갔지만 각자 또는 함께 만든 우물을 우리에게 남긴 것 같다. 누구라도 꼭 필요할 때 물을 길어 올려 마실 수 있게끔 말이다.


작년 가을(2022년 10월이다) '이중섭 이야기 2' 와 '휴식'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일본을 일주일간 방문했다. 결과적으로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중섭 부분은 자신 있게 글을 쓸 정도가 되지 못했다(일본을 다녀온 후 이 글을 시작하기까지 9개월이 걸렸다). 휴식을 잘하고 온 느낌은 더욱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은 한 가지를 추구하기에도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시간만 부족한 게 아니라 내면의 무언가가 더 부족했을 것이다.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지 말라고, 네 인생을 제대로 사는데 충실하라고, 이중섭이 웃으며 말해 줄 것만 같다.



(상인이 쓴 이중섭 이야기 2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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